by 이영락·안용로

배틀그라운드의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람들과 안용로 학생기자.
배틀그라운드의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람들과 안용로 학생기자.

시장에 출시된 지 1년이 채 안 된 신생 게임이 큰 인기를 끌며 선전하고 있다. 게이머들은 이기면 즐겁고, 심지어 져도 즐겁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배틀그라운드’이다. 배틀그라운드는 100여 명의 게이머가 한 게임에 참가해 맵 곳곳에 떨어진 아이템을 이용해 다른 게이머와 싸워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배틀로얄 형식의 게임이다. 

지난 9월 2일, 성남에서 열린 게임 컨퍼런스 IGC2017에서 배틀그라운드를 기획한 블루홀 기획팀장 최준혁씨를 만났다. 그에게 게임 흥행의 비밀과 게임 기획자의 삶에 대해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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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혁 기획팀장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블레이드앤소울·MXM 기획을 했고, 블루홀에서 테라를 거쳐 배틀그라운드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게임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저는 게임기획자란, 느낌을 논리나 숫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 기획자의 사전적인 정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개발에 참여하는 모두가 게임개발자이며, 게임 기획자라도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다양합니다. 제 경우에는,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하면서 부족한 시간탓에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일단 완성시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게임 기획자의 일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때론 몬스터의 소리를 녹음하기도, 때론 색을 정하기도 합니다.”

보다 사실적인 동작 표현을 위해 개발자들이 모션 캡처 제작을 하기도 했다. [사진=블루홀]
보다 사실적인 동작 표현을 위해 개발자들이 모션 캡처 제작을 하기도 했다. [사진=블루홀]

-블루홀은 직무가 크게 아트·테크·게임 디자인·사업·분석·사운드로 나뉜 것 같은데, 기획자는 어디에 속하나요? 각 분야를 간단하게 안내해주세요.
“아트는 말 그대로, 그래픽을 담당합니다. 이펙트, 캐릭터, 배경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UI(인터페이스)를 아트에 포함시킨 회사도 있지만, 저희는 UI를 기획으로 봅니다. 테크는 프로그래머죠. 그중에서도 코드를 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게임 디자인은 게임 기획자를 뜻하며, 사업은 아트와 테크팀에서 만든 결과물을 시장에 내놓고 마케팅하는 역할입니다. 더 나아가 커뮤니티 매니저와 E스포츠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틀그라운드팀에선 게임 디자인과 사업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일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죠. 분석은 기록을 분석해 업데이트 방향을 결정합니다. 사운드는 보통 오디오를 담당하지만, 블루홀은 영상과 사운드를 멀티미디어로 통합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개발실의 모습. [사진=배틀그라운드 페이스북]
배틀그라운드 개발실의 모습. [사진=배틀그라운드 페이스북]

-엔씨소프트에서 주로 MMORPG 장르 게임을 기획했는데 이유가 뭔가요? 이번에 다른 장르인 배틀로얄 게임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 이 장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여럿이 같이 한다는 점에서 MMO(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게임)라는 장르를 좋아합니다. 그동안 주로 이걸 개발한 이유는 당시 MMO장르에는 RPG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MMO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끼지만, MMORPG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장르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전 딱히 장르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한 종류의 장르를 만들기보다는 더 재밌는 게임 플레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런 점에서 배틀로얄이라는 장르는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죠.” 

-게임을 기획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나요?
“너무 뻔한 대답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이걸 플레이하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입니다. 예를 들어 총을 쐈을 때 괴물이 맞는다 하면, 내가 총을 쏘는 플레이어가 돼 총을 쏠 때의 소리, 액션, 총을 맞는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하는 게 중요하죠. 이건 일부의 사례이고요. 다른 예로 인터페이스를 기획할 때 누군가 만든 걸 보면 ‘정말 이걸 쓰라고 만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써보면 굉장히 불편하거든요. 글로 쓰면 맞는 것도 실제로 써 보면 불편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경험과 글의 차이입니다.”

-성공적인 게임 개발을 위해선 게임시장 분석이 필수일 것 같은데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제가 자세히 답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시장 분석은 필수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시장 분석을 할 필요가 없어, 시장 분석보단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왔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상 시장 분석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을 통해 알아아야 할 요소 중 가장 큰 건 수익성입니다. 개발비용 등을 고려해 얼마나 팔아야 할지 계산하는 거죠. 이때 분석하는 방법은 과금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패키지 판매이기 때문에 스팀(게임 유통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모든 게임의 장르와 판매량을 분석했습니다. 타겟과 게임 장르에 따른 판매량을 분석했을 때, 예상 판매량이 10만 이상이니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죠.

(홍보부 팀장) “개발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시장 분석은 필수입니다. 사실 게임 출시 전엔 흥행의 유무를 판단할 수 없어, 설령 흥행에 실패해도 배울 것이 남는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게임 기획자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가장 좋았던 순간이라면, 게이머들이 즐겁게 게임을 할 때. 그리고 게시판에서 제가 만든 게임에 대한 호평이 들릴 때, 게이머들이 생각지도 못한 놀이를 찾아낼 때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도 좋아합니다. 힘든 순간은, 일하면서 자기 한계를 느낄 때죠. 보통 ‘이게 최선이다’ 하고 타협하지만, 가끔은 그 타협이 안 될 정도로 올바른 해결 방안이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분석에 의존하고 계속 다양한 공부도 하지만 가끔씩 저런 현상이 찾아옵니다.

(홍보부 팀장) “보통은 시스템이나 전례가 있지만, 게임은 그런 게 없어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정답이 정해지지 않아, 어느 선에서 타협해야 할지 몰라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게이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흥행 중인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 [사진=블루홀]
게이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흥행 중인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 [사진=블루홀]
[사진=블루홀]
[사진=블루홀]

-배틀그라운드가 흥행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습니다. 결과물이 완벽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했고 게임에서 디테일을 전부 살렸습니다. 유저와의 소통도 중요하게 생각했죠. 또한 게임의 성공 이유는 보기에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보기에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게임을 만든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그저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액션을 넣자’를 목표로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보기에도 재미가 있었던 거죠. 게임 내적인 요소에서 흥행 이유를 찾자면, 아르마(ARMA, 사실적인 묘사의 밀리터리 FPS 게임)의 현실성, CS:GO(카운터 스트라이크, FPS 게임)의 경쟁성, H1Z1(좀비 서바이벌 게임)의 접근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하나지만 매번 시작 장소와 종료 장소가 달라짐으로써 플레이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했죠. 이 부분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이 외에도 판매 장소로 스팀을 선택한 것, AWS(아마존 웹 서비스)의 서버를 사용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제작 도구인 게임메이커 스튜디오 2의 디버깅 화면. [사진=요요게임즈]
게임 제작 도구인 게임메이커 스튜디오 2의 디버깅 화면. [사진=요요게임즈]

-게임 기획자가 되려면 어떤 걸 해야 할까요?
“다양한 경험을 깊게 해 봐야겠죠. 어떤 경험을 짐작하려면 그 경험을 하거나 최소, 근접한 경험이라도 해야 합니다. 경험은 감정과도 연관이 있어,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위해 책을 읽거나 다양한 곳에 가거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죠.

재미있는 점은,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게임을 많이 해야 한다’고 착각을 많이 합니다.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게임은 이미 이런저런 경험들을 만들어 놓은 결과물입니다. 어떤 상황을 직접 보는 것이 경험이라면, 게임을 하는 건 사진 찍은 걸 보는 거죠. 물론 전투기에 관련된 게임을 만든다고 전투기를 직접 타 볼 순 없지만, 전투기가 나오는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어 경험할 수 있겠죠. 게임만 하는 것 보다는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경험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컴퓨터 운용 능력이 있으면 좋지만, 오히려 이보단 자신에게 ‘정말로 게임이 만들고 싶은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혼자 만들어 봐야 합니다. 하다못해 보드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게임을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메이커 등의 툴로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게임 기획자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유니티 등의 프로그램으로 밑바닥부터 만드는 것보단 덜하겠지만, 게임 제작 과정을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생각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죠. 물론 이런 툴을 써도 RPG 게임 제작 등에는 제약이 있죠. 이런 제약에서 보통 두 분류로 나뉘는데, 대개 한 쪽은 포기합니다. 큰 걸 얻지 못하지만 여러 꼼수를 사용해서라도 이런 제약을 이겨내면 엄청난 성장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5월 고양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차세대 융·복합 게임쇼 ‘플레이엑스포(PlayX4)’ 참가자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지난 5월 고양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차세대 융·복합 게임쇼 ‘플레이엑스포(PlayX4)’ 참가자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앞으로의 게임 개발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게임 기획자에 대한 미래 전망이 어떨까요.
“게임 개발 산업의 미래는 밝습니다. 여러 지표만 봐도 점점 성장하고 있죠. 요즘 놀라운 건, TV에도 게임 용어가 등장합니다. 그만큼 젊은층이 게임에 익숙하다는 거겠죠. 다양한 게임이 나오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기 때문에 게임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 기획자의 미래는 별로 밝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건 게임 기획자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아이디어가 있고 기획서만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획자의 삶은 갈수록 전망이 없어질 겁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전망이 밝죠. 이를 도와줄 다양한 툴이 나올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인디게임을 개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신이 만드는 게임에 심혈을 기울이고 혼을 담는다면 최소 10만장 이상 팔릴 겁니다.”

(홍보부 팀장) “앞으로 단순한 작업은 기계가 많이 대체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창의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기계가 이부분까지 대체할 수는 없겠죠. 이런 점에서 게임 기획자의 미래는 창창해요. 스포츠는 미디어 산업(보는 산업)인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게임을 더 많이 봅니다. 게임을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측면에서도 게임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기획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예전부터 만들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이런 건 함부로 밝히기 어렵네요. 사실 제 플레이 취향은 스토리 위주의 게임입니다.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게임도 재미있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스토리가 있는 어드벤쳐나 시나리오가 탄탄한 게임입니다. 그래서 그런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렇다고 큰 규모로 만들 것 같지는 않아요. 아까 말햇던 것처럼 이제는 혼자서도 게임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배틀그라운드의 미래를 같이 일구어 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어떤식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네요.”

(홍보부 팀장) “게임 기획자들은 창작욕구가 많은 직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무언가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꾸준히 없는 길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청소년이 명심해야 할 것은 아이디어와 기획서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있으며, 기획서는 프로그래머가 더 잘 쓰기 때문입니다. 게임 기획자가 되려면 무엇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센스를 숫자와 논리로 표현할 수 있는 툴을 찾아 연습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글·사진=이영락·안용로(판교고 2) TONG청소년기자
도움=양리혜 기자 yang.rihye@joongang.co.kr


출처 : http://tong.joins.com/archives/48348#respond